사회복지 분야의 윤리와 철학 2 윤리학의 개념과 7대 쟁점 비교 설명

들어가는 말
윤리학(倫理學, ethics)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도덕철학(道德哲學, moral philosophy)이라고도 불린다. 영어의 ‘ethics’는 ‘ethos’, ‘moral’은 ‘mores’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윤리학에 관한 이론은 처음에 종교적인 교설(敎說)의 형식에서 나타났다.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종교의 모든 경전 가운데에는 신 또는 성인의 교훈으로서의 인간의 도덕적 규범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전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윤리학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 이와는 달리 고대 중국의 유학 등 경전은 오히려 윤리학이었으며, 이것들에 대표된 사상은 그 후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로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어 독자적인 윤리학의 역사를 형성하게 되었다.
윤리학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Sokrates)에서 시작하고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악은 무지 때문이라고 보며 철학(哲學, philosophy)의 목표는 덕(arete)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에서 지덕동일설의 주장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덕한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복덕동일설의 주장도 나오게 되는데,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지혜와 행복과 덕은 삼위일체가 됨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로 윤리학의 저서를 3권이나 남겼으며 그 가운데 둘은 일반적으로 그의 제자들의 저작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니코마코스 윤리학만이 그 순수성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이 행복이요, 또한 그것이 바로 영혼의 활동이라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플라톤이 영혼을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눈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덕에는 예지적인 덕과 윤리적인 덕의 두 가지가 있다. 이것은 각각 영혼의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예지적인 덕은 배워서 얻을 수 있고 윤리적인 덕은 습관에서 얻을 수 있다. 윤리학설은 덕을 목적으로 보느냐 혹은 수단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어떤 목적, 다시 말해서 행복에 대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덕은 행위의 목적에 속해 있다. 인간의 선은 완전한 생활 속에서 덕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다.
서양의 윤리학설은 칸트(Kant)의 저서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schen Vernunft)』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며 후세의 윤리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칸트 이후 많은 서양의 윤리학자들에 의해 발전해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윤리학 [Ethics] (학문명백과 : 인문학, 류명걸)
윤리학의 7대 쟁점사항 비교 설명
4차 혁명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에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다. 특히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팬더믹이 일어나면 언택트로 전환되고 서로 만나는 것 조치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더더욱이나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윤리학에 관련되어 상반되는 7대 학설들의 쟁점사항을 파악하고 비교해보자.
첫째, 윤리적 상대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
문화적 상대주의는 구체적 도덕 표준 및 규칙과 궁극적 도덕 원리와의 관계를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음에도 자신의 도덕적 관점을 도덕적 판단으로까지 진전시키면 윤리적 상 대주의 또는 윤리적 주관주의로 변이하는 것이다. 반면 윤리적 상대주의는 도덕에는 어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표준이나 원리가 있는 것이 아 니라 그것은 단순한 관습에 불과하며 선악의 개념도 주관적이어서 나에게 유리하고 즐거운 것이면 선하고 옳다는 것이다. 윤리적 상대주의의 근본 약점은 사실적 진술인 문화적 현상과 규범적 진술인 도덕적 원리를 혼동하는 오류가 발생한다. 윤리적 회의주의는 규범적 주장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간단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보면서 윤리학의 성립 가능성을 거부한다. 윤리적 허무주의는 ‘바람직하다’ 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는 어떤 주장도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극복해야 할 과제로는 도덕적 보편성과 도덕적 객관주의에 입각한 규범 윤리학의 새로운 성립이 요청되는 최근 현실에 있어 윤리적 상대주의, 회의주의, 허무주의를 허무는 것이다.
둘째, 개인윤리와 사회윤리.
개인윤리는 인간의 삶에 있어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궁극적으로 개인의 양심 및 도덕적 행위의 부족과 관련되는 개개인의 양심불량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 윤리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는 개인의 이성과 실천적 합리성의 완성을 내세운다. 윤리적 함축을 지닌 현대 주요 사회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사회윤리는 단순히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나 제도의 부실과 관련이 있다. 사회복지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절충주의적 입장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건전한 사회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상호 접근하여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셋째, 목적론적 자연관, 섭리의 자연관, 기계론적 자연관.
목적론적 자연관은 '인간행위는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 하였다. 행동과 선택은 어떤 선을 목표로 삼는다는 명제임을 강조한다. 목적론적 윤리설의 원조가 되었다. 17 - 18세기 기계론적 자연관이 등장할 때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섭리의 자연관은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성)에 의해 질서가 잡히고 정돈된다. 5세기 ~ 15세기의 약 1천 년간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원죄설’을 만들었다. 원죄는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해소된다는 ‘종교인(homo religious)’을 창조하였다. 인간의 행위는 신의 명령을 따를 때 가장 ‘윤리적’ 이 되는 것이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목적이나 신의 섭리가 아니라 기계적 운동법칙.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1543년) ~ 뉴턴의 ‘수학원리’(1687년) 까지 약 1세기 반 동안 서양의 정신세계에는 과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연주의 윤리학’ 또는 ‘윤리적 자연주의’가 대두되었다.
넷째, 법칙론(nomology)과 목적론(teleology).
도덕적 행위를 평가함에 있어 동원되는 원리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필연성을 지닌 인과법칙, 인위적 실정법 또는 보편적 도덕법에 따라 행위의 가부를 판단하는 법칙주의이다. 또 다른 하나는 행위주체가 세운 이상적 목적인 쾌락, 행복, 공리, 최고선 같은 것들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취한 자발적 행위가 그 목적을 위해 좋은 수단이 되면 선하다고 평가하는 입장으로 목적주의이다. 어떤 행위를 두고 ‘옳다-그르다’ 라고 표현하면 법칙론이다. ‘좋다-나쁘다’로 표현하면 목적론이다. ‘무엇 때문에 어떤 행위가 있었다’는 식으로 행위의 동기를 따지면 법칙주의 입장이다. ‘무엇을 위해서 어떤 행위를 했다’고 말하면 목적주의이다.
다섯째, 성악설과 성선설.
인간성에 관한 비관적 견해는 성악설이다. 반면, 낙관적 견해는 성선설이다.
성악설은 인간은 자신 속에 내재한 깊은 욕구와 내적 고취감을 신뢰할 수 없으며 대인 관계에서 갈등 사실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유대교 및 기독교의 교리는 원죄설을 신봉한다. 타락한 자를 구제할 수 있는 방책으로 교회 참여 및 신의 율법에 대한 복종을 제시하고 있다. T. Hobbes(1588년 ~ 1679년)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속속들이 反社會的(반사회적)이기 때문에 사회계약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인 荀子(순자, B.C. 298년 ~ 238년)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惡(악)하기 때문에 스승에게 무조건 복종하게 한다. 엄격한 계급제도를 실시함으로써 나쁜 성격으로부터 구제될 수 있다'고 했다. 성악설의 약점으로는 인간의 공격성, 이기성, 반사회적 특성이 본능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빈약하다. 사회과학은 인간의 비관적인 면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선설은 인간행위를 자기실현 또는 자기완성을 향한 활동으로 간주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B.C. 384년 ~ 322년), 대표적인 유교 사상가인 맹자(B.C. 371년 ~ 289년),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루소(1712년 ~ 1778년)가 있다. 인간의 내적 능력은 자애로우므로 육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선설의 약점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완성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명백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동기론(motivism)과 결과론(consequentialism).
동기론은 행위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때, 오직 내면적 동기를 기준으로 하여 가치를 판단하는 학설이다. 행위에 대한 선․악을 평가하는 도덕적 판단을 행위의 동기를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 목적 관념을 중시하는 주관적 동기설과, 목적과 그 실현의 수단 관념도 함께 중시하는 지향설(志向說)의 두 가지가 있다. 성선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동기론의 지지자가 되기 쉽다. 칸트의 동기론은 행위자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문화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결과론은 결과를 중심으로 행위나 사건을 평가하는 입장으로 평가기준을 결과에 둔다. 행위의 동기와 결과 모두가 선하거나 악한 경우에는 합의된 판정을 얻어내기 쉽지만, 동기는 선하지만 결과가 악하거나 악한 동기에서 선한 결과가 파생되었을 경우 합의가 쉽지가 않다. 객관적 실증이 가능한 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입장인 결과론은 전통에서 많이 나타난다. 영국의 윤리학자이며 철학자이자 법학자로 공리주의를 주장한 벤담(Bentham, 1748년 ~ 1832년)과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Mill, 1806년 ~ 1873년). 동기는 의지를 움직이는 감정이기 때문에 도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동기가 어떤 것이든 행위의 결과가 좋으면 선이 된다. 결과론의 약점은 위선자와 사이비를 장려하고, 의인이나 윤리적 행위가 경시되거나 약화되어 인간성이 소외된다는 것이.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로 시카고학파의 창시자인 듀이(Dewey, 1859년 ~ 1952년)는 동기와 결과를 분리하지 않고 서로가 연결된 하나의 의지 활동이라고 보면서 그것을 내면성과 외면성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이라 주장하였다.
일곱 번째, 자연주의(naturalism)와 직관주의(intuitionism).
기계론적 자연관이 윤리학에 적용된 것을 자연주의 윤리관이라고 한다. 자연주의는 도덕적 관념이 자연적 원천에서 도출된다고 보고 그 원천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다양한 경험적 사실에서 일반법칙을 끌어내는 귀납법을 사용했다. 예속을 벗어난 자유의 철학을 주장한 스피노자 (B. de Spinoza, 1632년 ~ 1677년), 영국의 철학자 홉스(T. Hobbes, 1588년 ~ 1679년)는 인간의 자기 보존 충동을 도덕적 관념의 원천이라 주장하였다.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이자 역사가이며 저술가인 흄(D. Hume : 1711 - 1776)은 쾌락과 동정을 자연주의의 원천으로 보았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며 실증주의자인 스펜서(H. Spencer : 1820 - 1903)는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여 유전적 본능을 자연주의의 원천으로 보았다.
직관주의는 도덕적 관념이나 의무는 어떤 것에서 도출되는 즉 경험을 통하여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행동을 보았을 때 그 자체로서 직관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선과 악을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론(empiricism)은 귀납법(induction)에 의존하지만, 직관주의로 명명된 자연주의 혹은 합리론(rationalism)은 연역법(deduction)에 의존한다. 영국의 도덕학파로 불리는 일파의 중심인물이며 이신론자이자 정치가 샤프츠베리(Shaftsbury, 1671년~ 1713년)와 영국의 논리학자이자 사상가 허치슨(Hutchson, 1684년 ~ 1747년)은 도덕적 감각이 직관 기능을 맡는다라고 강조하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 커드워스(Cudworth, 1617년 ~ 1688년)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인권운동가인 클라크(Clarke, 1675년 ~ 1729년)는 그 기능을 이성에서 찾았다.
자연주의와 직관주의의 장단점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다.
구분 | 장점 | 단점 |
자연주의 | 관습이나 전통과 같은 윤리의 기원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을 편견없이 다룰 수 있다 | 사실에서 가치를 도출하는 자연주의적 오류가 있다 |
직관주의 | 경험에 근거를 둔 윤리보다 선험적 명제에 근거를 둔 직관주의가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기 쉽다 | 오랜 세월동안 존중받는 도덕률이나 상식에 집착한 나머지 새로운 도덕률의 발전을 어렵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