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역사회복지의 역사를 전통사회,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로 구분하여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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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역사회복지 역사에 대한 내용이다. 전통사회의 지역사회복지, 일제강점기의 지역사회복지, 해방 이후의 지역사회복지에 대해 알아보자.
전통사회의 지역사회복지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마을은 농촌사회의 최소 단위임과 동시에 공존에 필요한 다양한 결속체와 규범, 규약을 만들고 지키면서 발전해왔다. 또한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 및 다양한 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극복하는 지혜로 마을 주민들의 복지에 대응하였다. 이러한 상부상조의 전통과 농민들의 미풍양속은 공적 사회복지체계나 민간 차
원의 지원체계가 존재하기 이전에 마을 주민들 스스로 형성한 공동체 생활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사회개발의 역사는 고대의 씨족 중심의 촌락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민속적인 마을 협동 관행
두레.
두레의 기원은 삼한시대에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노동이 능률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실시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고대국가에서 자기 마을의 방어를 위해 장정들을 묶은 군사조직 성격의 모임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다. 촌락 공동체의 내부질서인 공동 방어, 공동 노동, 공동 예배, 공동 유흥, 상호 관찰, 상호부조, 협동 조직체로서 우리 민족의 촌락 자치 질서를 이끌어온 모체가 되었다. 외부 경제의 침투로 농촌의 내부 질서가 해체되고, 구조와 계층의 분화가 이루어져 쇠퇴하게 되었다.
계.
신라 초기 유리왕 때 시작된 가배계가 최초라고 전해지며 신라시대 화랑도에서 유래된 향토계는 남성조직으로서 최초의 계이다. 계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출자하여 공공이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계의 기본 목적은 구성원의 상호부조, 친목 도모, 공동출자로 인한 경제적 이익의 추구이다. 계는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고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든 비교적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모임이다. 계는 주로 또래 집단으로 구성되지만 신분, 직업, 남녀,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계를 조직하여 다양한 종류의 계가 결속되고 이어져왔다. 이러한 계는 회원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상부상조의 정신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품앗이.
품앗이는 생산 농민들 간에 노동력을 교환하는 제도이다. 구성원수가 일정하지 않고 문호가 항상 개방되어 있으며, 수시로 또는 임의로 많은 교환 노동을 조직화하는 것이 특색이다. 보통 마을 또는 밀집한 취락이라는 자연적 공동 사회 내에 한정되어 구성한다. 두레가 공적이고 강제적인 성격을 갖는 반면, 품앗이는 사적이고 상호 신뢰에 기초한 소수 인간의 결합이다. 그리고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수시로 노동력을 교환할 수 있으며 생산 농민들의 협업적 작업의 기초로 이루고 있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는 제도이다.
향약.
향약은 덕업을 서로 권하고 과실을 서로 규제하는 것을 주된 정신으로 하는 것으로 사회적으로 유교 도덕이 행해지는 이상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봉건사회였던 조선의 질서유지 수단으로 지배층에 의해 동원되었다. 봉건 질서의 특성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신분에 입각한 차등적 질서가 원칙으로 강조되었다.
둘째,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엄격한 분리와 지배층의 소유 및 조세, 부역과 관련된 특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셋째, 구성원들이 윤리, 규범, 사회질서 등을 존중하는 것이 당위적인 덕으로 간주되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
사창
사창은 재앙이나 흉년을 대비하여 향민에게 곡식 징수 또는 기증받아 저장해 두는 촌락 단위의 구휼제도이다. 의창, 상평창과 더불어 삼창의 하나이다. 관에서 관장하던 의창, 상평창과 달리 백성이 스스로 만든 구제책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사창의 자본도 백성들이 스스로 출자하여 진행하였으므로 의창, 상평창과 달리 도시보다는 촌락을 기반으로 한 특징이 있다.
기타 공굴, 부근, 향도, 고지, 부조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지역사회복지
복지이념보다는 식민정책의 일부로서 시혜 또는 자선으로서의 정치적인 의미로 이루어졌으나 근대적인 의미의 지역사회복지사업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국농업을 식민지적 구조로 변경할 의도로 자소작농을 파괴하였고 봉건적 지주와 결탁하여 행한 토지조사사업의 결과이다. 자소작농의 강압적 해체는 천년 이상 유지되고 존속된 민간 협동체인 계를 비롯한 모든 조직과 단체에 큰 타격을 주었다.
교육 사업체였던 학계와 향계 등은 학교교육제도로 말미암아 서당이 폐지되면서 소멸되었다. 이자계와 같은 금융을 목적으로 했던 각종 협동체는 은행과 금융기관의 발달로 도태 또는 위축되었다.
혈족 단체인 종계 또는 화수계는 개인주의 사상의 침투로 붕괴되었고 산업을 목적으로 하는 계는 농회, 수리조합 등 새로운 각종 산업단체의 발달로 소멸되었다.
협동노동조합은 가장 조직적이고 근대적 성격의 운동이다. 협동조합의 본질은 경제적 약자들의 단체이며 경제 단체, 인적 결합체이다. 상호부조의 단체, 자주자조의 단체, 지역적인 단체라 규정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회복지사업은 사회복지지도기관, 구호법, 사회복지시설과 사업으로 육아시설(전국 22개소), 임신부 상담소(5개소), 탁아시설(4개소), 영아 건강상담소(5개소), 빈궁아 교육기관(9개소), 불량아 감화 시설(5개소), 맹아 보호시설(2개소), 육아협회. 1938년 서부 인보관, 39년 용강 인보관, 40년 성동 인보관, 41년 영등포 인보관 개설되었다.
지역사회복지에 관한 연구활동으로는 사회사업에 관한 각종 문헌 발간, 사회 강습회 실시, 사회사업협회 설치과 사회사업 강습회 개최하였다.
해방 이후의 지역사회복지
사회복지공동모금
공동모금회는 시민과 사회복지기관의 협동조직이다. 우리나라 민간복지 분야의 기금 조성이 제도화된 것은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여건 및 복지계의 미성숙으로 한 차례 공동모금사업을 끝으로 실패로 끝났다. 이후 1975년부터 관에 의하여 불우이웃돕기모금이 시작되다가 1980년 사회복지사업
법을 제정하였다. 다음 해부터 이웃돕기 성금과 장애인 성금을 통합한 사회복지사업기금이 보건복지부에 설치됨으로써 관 주도에 의한 민간성금의 모집 및 배분의 틀이 상정되었다. 초기 모금은 적십자회, 수재민 구호기금, 우편 및 극장 모금 등의 방법을 택하엿따. 백만인 걷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외원 기관과 지역사회복지
1952년 7개 기관이 모여 외국 민간 원조단체 한국연합회 (Korean Association of Voluntary Agencies; KAVA)가 조직되었다. 1954년에는 한미 재단으로부터 25,000 달러의 기부금을 받아 기반을 세우고 55년 사무국을 두었으몇1964년 회원단체는 70여 기관으로 증가하였다.
각 기관들이 한국인에 대한 기여와 봉사를 증대, 강화하기 위하여 회원 간의 상호 협의에 의한 보건, 교육, 사회복지, 구호 및 지역사회개발 등의 분야에서 정부기관과 유대를 갖고 효과적으로 협조, 통합된 단체로서의 사회복지활동에 대한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보건, 교육, 지역사회개발 사업, 전문 사회복지사업 전개. 전쟁고아를 돕기 위한 시설보호사업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후 사회복지사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원조의 중복을 피하고, 상호 간의 전문지식을 교환하였다. 민간 복지사업의 주축이 되었다. 70년대 이후 한국인으로 대체되었다.
지역사회개발사업
UN과 미국에서 후진국 개발사업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1950년대 후반 농촌지도사업과 함께 농촌개발을 위한 미국 원조사업의 하나로 착수하였다. 이들은 한국 정부와 더불어 지역사회 개발사업 2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400여 개 사업을 추진하였다.
지역사회개발사업으로서의 새마을운동
공식적인 시작은 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지방장관 회의에서 행한 유시로 비롯되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은 주민의 참여를 끌어내어 농촌을 발전시키려는 지역사회개발로 그 의의와 성과가 크다. 하지만 지배 이념과 정권의 의도성이 짙어 그 의미가 퇴색되었던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화는 새마을운동의 퇴조를 불러왔다. 물론 지역사회조직사업 유형도 지역사회개발에서 지역사회행동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생활권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전개되는 사회운동이 90년대에 활발하게 진행되었다.